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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만성병 회복칼럼

이해왕선교사 { homepage } 2005-06-06 오후 12:33:00

장애/만성병 회복시리즈 4 - 무엇이 문제 일까?


장애 및 만성병에 처한 사람들은 육체적인 제약점보다는 그로 인한 정서적 고통(Emotional pain)에 더 많은 반응을 보여서 에너지를 낭비하는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육체적인 제약은 여러 조건들을 고려하게 만들어서, 나름대로 삶에 대한 세부계획을 세우기도 하지만, 통상 자신의 신체적 제한점에 필요이상으로 초점을 두다가 육체적인 어려움과는 관계가 없는 분야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이다.

1. 육체적 제약과 정서적 고통 
(Physical limitations & emotional pain)


예를 들어서, 심장병이 있는 사람이 운동을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에 너무 신경을 쓰다보면 스트레스를 자초하게 되어, 음식이나 술로 대리만족을 추구하면서


“이렇게 제약점이 투성인데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느냐?”는 좌절된 생각을 하기가 쉽다.

또, 실명으로 갑작이 시각장애인이 된 사람은 식탁에서 음식을 볼 수가 없어지자, 가족이나 친구와 식사나 외식하기를 꺼려 할 수도 있다. 

방사선 치료 Chemotherapy를 받은 여성은 머리카락이 빠져서 가발을 쓰고 누구를 만나기가 싫어져서 평소 가까웠던 친구들과의 관계성도 멀리 하게 될 것이다.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중년 남편은 발기불전(Impotence )으로 아내와 성적접촉을 회피하려고 들 것이다.

더러는 육체적 상태가 점점 더 악화되면 생명에 위험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갖기 쉽고, 이러한 두려움은 무기력, 절망, 좌절로 이어지게 되어, 자신을 더욱 슬프게만 여기게 될 것이다.

결국 이런 정서감정은 수치심과 고립을 동반하여 자신은 가치 없는 사람이라든가, 아무도 나의 고통을 이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러 아무 일도 하기가 싫어질 수도 있다.

수치심(Shame) 이나 부정적인 정서감정(Negative emotion)은 영적성장을 저해하거나 파괴할 수 있음으로 이들을 제때 해소할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정서적 고통을 대처하는 과정 중에 영적으로 더 강화될 수도 있어서 오히려 축복 이라는 말들을 하기도 하여, 정서적 고통은 선택여하에 따라서 재앙(Curse) 또는 축복(Blessing)으로 반응을 보일 수 있는 양면성을 띠고 있다고 할 수 있다. 

2. 정서적 고통 확인 (Identifying emotional pain)

정서적 고통에 대처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고통을 알고 확인할 수 있어야만 한다.


우리 모두 함께 장애 및 만성병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이 흔히 가질 수 있는 정서적 고통들을 살펴보고, 그들을 우리들의 삶에 긍정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법도 알아보자!

무기력 (Powerlessness)

장애 및 만성병은 모두 미리 예측을 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것으로, 청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언제 청각을 완전히 잃게 될지를 모르고, 암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은 언제 다시 암세포가 재발될지를 몰라서 병이나 상태에 대해 전혀 통제력을 행사 할 수가 없다.

자신의 육체건강에 대한 통제력상실은 무기력과 같으며, 무기력해 질수록 자존심도 낮아지게 마련이다.

자신감이 적어지면 자신의 내면과 외부에 대해서 통제력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서, 생각, 감정, 행위 등을 操作(Manipulate) 하려고 든다. 결과적으로 자신의 아집에만 더 사로잡힐수록,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서 통제감정을 추구하려고 해서, 주위사람들의 죄의식을 들추면서까지 그들을 조정하기도 한다.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자신을 증오하기도 하지만 추구할 수 있는 위력은 모두 다 해보려고 한다.

무기력은 마치 완전히 불행해 진 것 같은 감정일 것이다. 이런 상황을 축복으로 만들 수 있는 길은 영적회복을 위한 회복 12 단계의 첫 단계에서 무기력을 인정하는 일이고, 무기력을 인정하면 자유함으로 가는 회복열차에 탑승하는 승차티켓을 얻게 된다.

  두려움과 걱정 (Fear & anxiety)

두려움은 정서적 고통에 큰 부분을 차지하며, 육체적 조건이나 병의 악화과정, 고통, 통제력 상실과 그 결과, 또는 이대로 죽을지도 모른다는 등의 여러 가지 두려움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피검사 수치가 점점 더 나쁘게 나오거나, 몸속에서 무엇인가 이 물질이 만져지는 것 같으면, 두려움은 강박적인 것으로 된다.

두려움은 주로 과거 체험이나 의술과 약만으로는 치료가 될 수 없다는 데서 올수 있으며, 고통스런 치료나 약물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도 있을 수 있다. 그리고 치료비 부담이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될 수도 있다. 

가족과 친구에 대한 걱정도 생긴다. 그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느낄 것이며, 나의 신체적 조건이 그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될지도 걱정이 된다.

퇴행성 질병(Degenerative illnesses)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가산을 치료비로 다 당진하게 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는 물론, 배우자와 자녀들의 앞날에 대한 걱정도 이만 저만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두려움은 비열한 정서감정(Sneaky emotion) 일 뿐이며,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스며들어 우리들을 꼼짝 못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우리들의 마음을 자꾸만 잠식하여 행복해야할 에너지를 약탈하여, 영적 성장을 방해하기도 한다. 

근심(Anxiety)은 두려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려는 마음이며, 지나치게 두려움에 휩싸이다보면 더 근심 걱정이 생겨서 제대로 삶에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게 만들며, 근심걱정이 가세된 두려움은 만성적으로 되어 본인 스스로도 어쩔 수 없게 된다.하지만, 두려움은 축복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즉 두려움을 정서적 고통으로만 국한시켜서, 통제가 가능한 심리적 반응(Manageable psychological response)으로 인식하면, 두려움은 다만 두려움에 불과할 뿐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두려움에 대한 이러한 이해는 무기력(Powerlessness), 고립(Isolation), 분노(Anger), 비애(Grief), 또는 장애 및 만성병에서 체험될 수 있는 기타 정서감정들에 어떻게 반응을 보일 것인 가에 대한 긍정적인 선택을 가능하게 만든다.

우리들은 두려움을 선택할 수도 있지만~
두려움을 희망과 신념으로 대치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자기 연민 (Self-pity) 

장애 및 만성병으로 도전을 받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상태를 후회하게 마련이고, 누구나 이런 상황에서는 “어찌 이런 참담한 일이 내게 생겼단 말인가!” 하는 절규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기연민에 빠지게 되면 ~


“불쌍한 이 몸! 가엾은 내 모습! 가련한 나!” 하며 자신을 한탄만 하게 되어, 정작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있는 길을 볼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문제이다.  

한 경우를 예를 들면, 인공항문(Colostomy) 수술을 받아 백을 부착하고 다녀야만 하는 사람은 다음과 같은 자기 연민을 나타낼 수도 있다.

“이런 불편한 모습으로 어떻게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서 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이 모습으로 공공화장실을 이용 할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자기 연민은 자신의 고통만 걱정한 나머지, 주위 사람들을 자신의 고통으로 끌어들여서 자신을 더 불쌍하게 보도록 만드는 격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 연민이 심해지면 주위 사람들에게 화를 내거나, 그들의 죄의식 감정을 들먹이는 일도 서슴지 않게 되어, 그들이 자신을 이해하고 진정시켜 주기를 바라게 된다.

하지만 가족이나 주위 사람들은 우리들의 반복된 자기연민에 지쳐서 외면하게 될 것이고, 그럴수록 우리들은 자기연민의 사이클을 계속 더 강화시킬 것이다.

결국 자기연민의 종말은 “고립(Isolation)” 이라는 무서운 다른 정서감정으로 우리자신을 묶어버리고 만다.

 고립 (Isolation)

어디가 아프거나 장기간 몸이 불편하게 되면 혼자인 것 같고 다소 정상적인 세상에서 동떨어진 기분을 갖게 마련이다. 비록 사랑하는 가족들과 그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어도 아무도 이 소외된 감정을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

식당에서 친구들과 식사를 나눌 때 다음 과 같은 상황들을 상상할 수 있다.

폐암으로 고생을 하는 한 중년 여성은 친구들이 요즘 건강이 어떠하냐고 하는 질문에, 겉으로는 별일 없다고 말을 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혼자 쓸쓸한 기분이다. 

또, 치매초기 단계에 있는 한때 왕성한 운동선수였던 남성은 식사 도중에 세면장에 다녀온다고 빠져 나와서는 벽에 몸을 기댄 체 절망과 고독감으로 한숨지을 수도 있다.

고독의 해결방법은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인데, 대부분 장애/만성병 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려고 하지 않는 4 가지 이유들이 있다.

첫째, 사람들로부터 동정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둘째, 일일이 설명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셋째, 나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가 않다.
넷째, 수치심으로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다.

수치심과 고립감정이 함께 똘똘 뭉쳐지면, 자신이 완전하지 못하다고 생각 될 적마다 수치심을 갖고 고립하게 된다.

또, 수치감정은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을 어떻게 소개해야 할까하는 두려움을 갖게 만들어, 결국 수치심은 자가도취(Self absorption)로 이어져서, 낮은 자아심과 고립감만 더 증가시켜 준다.

그러나 고립의 고통 없이는 도저히 터득할 수 없는 축복(Blessing)도 있을 수 있다. 

첫째, 더 이상은 고립감을 견뎌내기가 어려워지자 자구책으로 사람들을 만나려고 시도해서, 사람들과의 어울림을 통한 영적성장을 이룰 수 있다.

둘째, 회복 12 단계 영적프로그램의 도움으로 "고립(Isolation)"을 "홀로(Aloneness)"로 대치할 수 있다. 

홀로란 자신의 자아를 진정 이해하고 대화하는 편안한 시간들을 말하며, 이런 상황에서는 생존을 위한 방법들을 더 학습할 수 있게 된다.


* Note -
적절한 용어 표현이 어려워서, 고립과 홀로의 비교를 영문으로 소개 한다. 
Loneliness is like a wound. 
Aloneness is like a flower, a blooming in your heart.
고립은 상처받은 감정이고, 홀로는 당신의 마음에 활짝 피는 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분노 및 격분 (Anger & rage)

장애/만성병이 있는 사람들은 일반사람들과는 다른 분노와 격분을 경험한다. 원래 내적 갈등을 제대로 표출할 수 없을 때 분노심이 생기지만, 육체가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거나, 무기력감, 무의미, 질투심, 함정에 빠진 감정 등 때문에도 분노하게 된다.

하나님, 자연, 삶, 세상, 치료약품, 의사, 병원 등에 대해서도 화를 내며, 심지어는 가족과 친구들이 자신을 이해해 주지 않거나 원하는 데로 반응을 보이지 않아서도 화를 낸다.

분노는 주위 사람들을 조정하는 수단과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하며, 격분은 알코올, 마약, 자해시도, 무모한 운전 등과 같은 자멸적인 행위(Self-destructive behaviors)로도 비화될 수 있다.

그러나 진짜 분노와 격노의 위력은 막강한 에너지 이다. 분노심으로 자멸적인 행위에 표출될 에너지를 육체적인 극복과 정서적 성장으로 전환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인공위성을 발사시킬 때 막대한 에너지가 동시에 연소되어야 위성이 지구괘도 밖으로 올라 갈 수 있듯이, 분노심과 격분 에너지를 정서적 충만을 위한 추진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  비난 및 애매모호 (Blame & ambiguity) 

그간 만성병이나 장애 문제에 대해서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왔거나, 지나간 일들을 생각하고 싶지도 않을 정도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미 그런 문제들이 발생되었음으로 이제 우리들은 그 문제들을 의식하고 받아들여서 적응해야 한다.

우리들은 장애/난치병에 대한 의미를 좀더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누가 무엇에 책임을 져야하는 지를 결정해야 한다.

누구나 결과가 별로 일 때에는 쉽게 책임을 지지만, 그 결과가 아주 부정적인 것일 때에는 서로 잘못을 떠맡기기 위해서 비난거리를 찾게 마련이다.

장애나 만성병에 대한 울분을 운명, 의사의 오진, 잘못된 의료치료, 부모의 유전, 사고 가해자 등 누구에게 비난해야 할지, 또는 그 울분을 내면으로만 간직해야 할지, 아니면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자신을 수치스럽게 생각해야 할지도 애매모호 해진다. 

주위 사람이나 기관에 대한 비난은 격노(Rage)로 비화될 수도 있고, 본인 스스로에 대한 비난은 자학과 우울심리로 될 수도 있다.

비난이 누구에게 향하든 마음에 평안은 없게 되므로, 일부 사람들은 좀 뒤로 물러서서 문제가 발생된 조건들을 다시 살펴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교회에서 집으로 차를 몰고 오는 길에 갑자기 길에 뛰어든 강아지를 피하려다가 전신주를 받고 차가 망가져 부상을 당한 어머니는 강아지를 보호하려다가 생긴 자신의 희생적인 행동(Self-sacrificing act) 때문으로 여길 경우에 사고로 인한 부정적인 정서감정은 긍정적인 정황에 흡수되어, 아무에게도 비난을 하지 않아도 마음에 평안을 기할 수 있게 된다.

또, 중풍이나 중독문제가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병고를 통해서 나의 삶에 우선순위를 재조명해 보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 같다는 말들을 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우리들도 장애와 만성병이 누구의 잘못이든, 조건들을 주의 깊게 조명해보며, 애매모호함을 회피해서, 비난이 더 몰고 올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어야 한다.

일부 사람들은 곤경에 처할 때에, 다이어트, 음식조절, 비타민 섭취, 운동 등을 더 열심히 해 보지만, 스트레스와 고통은 반복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새로운 스트레스 축소방법은 비난을 해야 할 문제들에 긍정적인 생각(Positive thinking)을 해 보는 것이다.

실례로 심장병과 고혈압으로 고생을 하던 환자가 매일 명상과 기도 속에서 자신의 심장이 건강하고 튼튼한 모양의 것으로 상상한 결과 혈압수치가 내려갔다고 한다.

이제 그간의 비난이나 애매모호한 반응들을 다시 심사숙고 해보면, 우리들도 장애와 질병에 대한 의미의 실마리를 풀을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우리들의 정서적 고통에 숨겨진 거부반응(Denial)을 표출 시키게 만들어서, 실질적인 책임성과 영적성장을 추구하는데 훌륭한 도움이 될 것이다.

- 이해왕 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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